선생(先生)

먼저 산다는 의미의 ‘선생’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의 선생(님)은 가르치는 사람의 의미가 크다.
실제로 교편을 잡고 있지 않더라도, 그 사람으로부터 무언가 배울 수 있다면 우리는 주로 그 사람을 선생님이라 부른다.
먼저 살았고, 먼저 경헙했기에 무언가를 가르칠 자격 또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먼저 살면 누구든 가르칠 수 있는가?
당연히 아니다 🙂
먼저 살았던 사람들이 대체로 정제된 지식을 가지고 있고, 후에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보다 손쉽게, 소위 말하는 노하우와 함께 그 지식을 물려받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 본인의 노하우를 곁들여, 더 나은 방식으로 지식을 한 번 더 정제하고, 훗날 본인이 선생님으로서 지식을 전파한다.
요점은 여기에 있다.
더 나은 방식으로 지식을 정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
이 속에는 본인이 경험한 지식이 가진 의미, 의의, 더 나아가서 지식이 올바른지, 부족한 부분은 없는지, 경험하게 된 인과는 무엇이었는지 검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전수받은, 경험한 지식이 항상 올바르다고 믿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검증이 부족한 지식들을 가진 채, 본인의 경험이 옳다고만 믿고 선생’질’을 설파하려는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꼰대가 되는 것 같다.
단적인 예로, 성공한 사람이 어떤 강연에서 “하고싶은게 있으면 자퇴하고 매진하세요! 저처럼요!” 한다고 한들 감동받는 사람은 드물다.
그만한 여건, 바탕이 존재했기에 자퇴하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지 그 강연을 듣는 사람들에게 가당키나 한 상황이겠는가.
다른사람들이 아니라고 하는 지식을 믿는다면 그건 지식이 아니라 종교이다.

반면, 전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산, 선생한 사람들은 후대 사람들에게 반드시 모범이 되고, 지식을 전파해야 하는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린것 같다.
나이를 먹게 되면서 자연스레 머리, 몸에 녹아든 지식은 자연스레 후대에 전파될 것이다.
가르침이 필요하다면 그때에 걸맞게 가르치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열을 내서 가르치려 들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후대 사람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조언해 주는 수준이면 되지 않을까 😀

사실 이런 고민을 하게 된 이유는…
위에 말했던 꼰대같은 강연을 들은 이유도 있지만
동시에 멘토링을 통해서 얼핏 ‘내가 누군가에게 모범을 보이는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하기도 했다.

18학번이 입학하고 있는 지금, 그들이 학부 13인 나를 보면 내가 08을 보는 기분일 것이고, 심지어 멘티인 16학번이 나를 봐도 내가 10을 보는 기분일 것이다.
내가 봤던 08, 09, 10들은 다들 어른스럽고 무언가 다가가기 힘든 위-대함이 보였는데,
나는 과연 16, 17, 18들에게 그런 존재라고, 존재로서 당당할 수 있겠는가?
라는 생각들이 요즘 스쳐지나간다.

아직 잘 모르겠다.
스스로에 대해 떳떳하는 것도 벅찬데 남에게까지 떳떳할쏘냐…ㅋ
한 가지 믿는 사실은, 사회는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고, 그 바탕엔 자연스러운 지식의 전파가 숨어있으리란 것.
내가 키덜트라고 해서 영영 정신연령이 자라지 않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 보단, 그런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다 한들 자연스럼게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다들 그렇지 않은가. 내가 어느새 어릴적 보던 선배보다 나이를 더 먹었다고.
본인이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지식의 전파는 자연스레 이루어지고 있으리라 믿는다.

-RedCol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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